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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시즌 감상

edited April 2016 in Football Forum
텀블러에 올렸던 개인적인 감상인데 사실상 시즌이 끝났기에 공유해 봅니다.

1. 지겨움

나의 표현이 아니다. 아슨 벵거의 표현이다. 아슨 벵거는 지난 3월 본인이 스스로 여전히 탑 레벨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거듭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겹다고 답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정확히 그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나도 똑같이 지겹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아스날에는 무엇보다 새로움이 부족하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얼굴들, 그리고 경기장 안팎에서의 새로운 분위기가 절실하다.

최근 아스날의 축구를 보고 흥분해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으면 올시즌의 만유전의 3-0 승리 정도가 유일했던 것 같다. 유럽 대회에서의 흥분되는 날들, 마지막 경기까지 가는 숨막히는 우승 경쟁 이런 탑 레벨에서 느낄 수 있는 흥분과 짜릿함은 4위라는 보신주의에 다 밀려버린 느낌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벵거가 떠나면 이런 안정감이 그리울 날이 올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이 떠난 후의 만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고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거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도 벵거가 남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슨 벵거가 떠난 후는 모든 것이 오직 누구를 선임했는지, 그가 얼마나 잘하는지, 또한 그가 잘하도록 어떻게 지원할지의 문제일 뿐이다. 아슨 벵거가 있었으면 어땠을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누구를 선임하느냐의 문제이다. 거봐라 아슨 벵거니까 그동안 그나마 잘했왔었던 것으로 증명되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차기 감독이 잘할 경우 벵거가 잘 닦아놓은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면 차기 감독이 못하면 벵거가 잘 닦아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벵거가 남아야 하는 기준은 오직 벵거가 앞으로 우승을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논쟁마저 지겹다.

2. 내전

아슨 벵거가 남긴 유산들 중 하나는 팬들과의 반목, 팬들 사이의 대립이다.

스완지 전 패배 이후 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벵거의 발언은 아슨 벵거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4위 트로피만큼이나 최악의 발언으로 기억됨직한 것이었다.

또한 그 직전에는 앙리가 자신의 칼럼에서 스완지 전에서 홈팬들의 분노가 이렇게 높았던 적을 본적이 없다고 말하자, 앙리는 스타디움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면서 팬들의 반응을 어찌 아는지 모르겠다며 반격한 바 있다.

제일 좋은 자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정말 충격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애제자이자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였던 이에게, 이제 너는 펀딧이라는 편안한 자리, 셀렙으로서 가장 비싼 자리에 앉아서 지적만 하고 있다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역공한 것은 정말 정말 실망스러웠다.

누가 맞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이미 벵거를 놓고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진 아스날 팬덤은 그 자체로 해롭다. 한 오래된 아스날 팬은 이렇게 반으로 갈라진 팬덤은 본적이 없다고 말하며, 그 자체로 아슨 벵거가 떠나야 하는 이유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은 실망과 안타까움을 넘어 그저 괴롭다.

3. 브리티쉬 코어의 붕괴

벵거는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키워내는 걸 선호한다고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나는 근년의 벵거의 선수 키워내는 부분을 오히려 지적하고 싶다. 최근 아스날은 좋은 선수를 키워낸 적이 없다.

파브레가스가 있기에 걸렀던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신이 더 상위 클라스임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월콧이 있기에 걸렀던 베일은 명실상부 글로벌한 수퍼스타이다. 아스날은 이제 제대로 된 톱 급 선수를 키워내야만 한다.

올리비에 지루를 옹호하면서 보낸 지난 3년 동안 그리즈만, 오바메양 등이 월드클라스 포워드로 발전했다. 그리고 바이언의 코망이나 만유의 마샬과 같은 선수도 있다. 더욱 아픈 것은 이들은 모두 프랑스를 기반으로 하는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벵거는 당연히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올 시즌만 해도 벵거는 마샬의 포지션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에이전트의 비웃음을 샀으며, 파예를 알고 있었으나 그는 꾸준함이 부족한 선수였다고 언급하면서 한 언론의 기사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벵거가 고르고 골라서 집어들은 프랑스 재능은 사노고였다.

새 감독의 팀 빌딩은 보통 2-3년을 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임 감독들은 대부분이 3년 계약을 한다. 한 벵거의 충실한 팬은 이렇게 말했다: '2006-2012년은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2013-2016년은 명백한 실패다'라고.

그리고 그 실패의 중심에는 브리티쉬 코어의 실패가 있다. 그 기간 아스날의 영입 정책은 외부에서 빅네임 영입을 꾀하면서 대부분의 유망주들은 잉글리쉬들로 채워서 기회를 몰아주는 전략을 선택한다.

벵거는 2013년 브리티쉬 코어와의 재계약 당시 그들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마치 그간 잉글랜드에 빚진 것을 갚아주겠다는 결연함 마저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실패한다.

완전히 주전급으로 올라섰다고 기대했던 람지가 올시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근래에 들어서는 스페인 출신의 베예린 정도만이 높은 레벨로 치고 올라온 선수라 말할 수 있다.

과거 도르트문트와 아틀레티코의 성공이 독일과 스페인의 좋은 유스 자원의 덕을 보았다면서 변명을 할 수 있었다면, 올시즌 토튼햄의 잉글리쉬 선수들의 발전과 그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아스날 선수들의 유로 2016 잉글랜드 스쿼드 대거 탈락은 더 이상 변명의 단어들을 잃게 만들었다.

4. 아슨 벵거의 퀄리티

그럼에도 나는 아슨 벵거의 퀄리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아슨 벵거의 퀄리티는 장기(롱 텀)에 있다. 빌리 빈의 말처럼 그는 마치 감독을 백 년할 것처럼 클럽을 운영한다.

그것은 클럽에 거대한 안정성을 더해주며 선수 영입에 큰 플러스가 된다. 감독이 바뀌면 하루 아침에 주전인 선수가 벤치로 내려가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아스날로 온다면? 그럴 일은 없다.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 있어 “런던”에 있는 “챔피언스 리그” 클럽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를 꾸준히 진출하는 것은 당연히 벵거의 대단한 공헌들 중 하나이다.

아슨 벵거가 본인을 규정짓는 4위 챔피언스 리그 16강을 한번도 무너지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해 나가는 것 그 자체가 벵거의 진짜 퀄리티이다. 부분적으로는 해오던 관성,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래 해왔기에- 클럽을 구석구석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그의 통제력 등등의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벵거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지만, 역설적으로 덕분에 클럽은 그를 이을 다음 사람으로 감독을 교체하고 새로운 사이클을 시작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데일리 메일에서는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했다: 감독을 고용한다; 그에게 얼마를 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에게 쓰게 한다. 그가 성공적이면 그를 잡고 아니면 그를 경질한다. 그걸 반복한다. 그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아슨 벵거에 대한 케이스에는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단 한가지 이유 뿐이다 - 지금 성적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해에 도르트문트와 결별을 발표한 클롭과 도르트문트 구단의 행보는 현대 축구의 가장 모범적이고 깔끔한 감독 교체 사례로 언급될 만하다. 조나단 윌슨이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축구 감독의 사이클은 실패로 끝난다 -  마치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신선함과 새로움이 떨어지면서 시청률과 화제성도 떨어지고 결국에는종영 당하는 예능 프로의 수명과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벵거에게 아직 완전한 실패자 낙인이 찍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큰 이유로 그가 아직 아스날의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이제는 아슨 벵거가 우승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단지 오래하고 있기 때문일거라는 느낌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벵거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벵거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난하는 클럽의 보드진 덕택일 것이고, 아스날을 누구 보다 사랑하는 팬들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주면서 이뤄낸 결과일 것이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팬들도 이제는 반복되는 역사에 피로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벵거가 아무리 특별한 감독이어도 클럽과 별개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벵거가 팀을 사랑하는 팬들과 대립하며, 그들이 팀의 실패로 직결되는 벵거의 실패에 기뻐한다면 이 팀은 깊게 병들어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제라도 만약 벵거나 보드진이 어느 포인트에서건 한발 물러서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한다면 모든 팬들이 하나가 돼서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겁니다. FA컵 우승때처럼요.
  • 애정이 담긴 글 잘 봤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릴 시간이 머지 않은 것 같네요.
  • 벵까 벵빠. 정말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이곳의 시작에 대해서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고.

    개인적으로는 저런 단어가 나오는것 부터가 감독이 문제라고 봅니다. 많은 팬들이 감독의 인간적인 부분이 싫어서 까거나 좋아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팀 성적, 경기 전 후 인터뷰 등에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텐데요.

    성적이 좋으면 칭찬하고 좋아하고 나쁘면 거침없이 까야합니다. 더군다나 벵거는 일시적이 아니고 10년이 넘었는데 좋게 생각할 수 있을리가...

    이번 시즌 초에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는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켜보자는 이야기도 꽤 나왔던걸로 기억하구요.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보면 어찌나 그리 예전과 같은지 그 일관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네요.

    팬들마다 바라는게 다소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가 팀이 지속적으로 이기고 아이덴티티, 긍지, 우승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는걸 싫어하는 팬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패배감, 피로감 거기에다가 팬들을 서로 싸우게까지하는 감독이 우승도 아닌 4위 트로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이상은 모르겠네요.

    이미 떠나야할 시기는 지났고 마지막으로라도 본인이 결단을 내려주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힘들겠지요.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 정리해주신 내용 중 '지겨움'이라는 부분에 가장 공감합니다.

    특히나 최근 아스날 축구의 경우 전술적 부재로 인한 것인지, 선수들의 클래스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매번 답없는 축구만 계속 보여주고, 매번 변함없는 스쿼드 (스쿼드 변경 이유가 부상때문이란것도 매 시즌 똑같네요), 변함없는 교체카드, 변함없는 내용에 결과까지 지겨워 죽겠습니다.

    아아...
    아......

    왜 팬들끼리 싸우게 만드는지 모르겠네요....

    최근 몇년간의 벵거 및 보드진들의 행동들을 보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어도, 팀보다 위대한 감독(+보드진)은 있다처럼 느껴집니다.

  • 정말 지겨워요 경기를 보는 거 자체가 곤욕일 정도로
    나는 경기를 보는게 즐거워서 아스날 팬이 되었는데 재미는 논외로 치고 왜 경기를 보면서 또 경기외적인 부분으로 고통을 느껴야 되는지 참
  • 저도 정성과 애정이 듬뿍 들어간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모름지기 팬 사랑 먹고 사는 프로축구팀이라면 경기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지겨움이란 단어와 '2006-2012년은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2013-2016년은 명백한 실패다'라는 것이 가장 공감가네요. 개인적으로는
  • 읽으면서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결과와 실망에 지겹다는 것과 
    최근의 연이은 실패는 변화에 대한 이유가 된다는 것
    특히 공감가네요.

    이 두가지 때문에 한동안은 그냥 결과만 확인하다가
    좋은 경기 나왔으면 공홈에서 경기보는 식으로 좀 스스로를 보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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