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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융베리 – 코치직의 모델이 되기까지

edited October 16 in Football Forum
애슬레틱에서 융베리 관련 기사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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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미 로렌스와 거너블로그, 온스타인의 같이 쓴 기사입니다.



다만 융비어천가가 좀 웃기긴하네요. 너무 길어서 쪼갰습니다. 반은 내일 올릴께요 즐감. 






프레디 융베리가 항상 코치를 꿈꿨냐면 그건 아니다.  그가 말하길 “에이 그건 내 계획이 아니었어.” “ 난 내삶을 사랑한다고!”



융베리가 MLS에서 뛰던 시절 동료인 스티브 자쿠아니도 동의했다. “ 누가 2009년이나 2010년 내게 “야 융베리가 나중에 뭐할 거 같냐?”라고 물어봤을 때 절대 “코치”라고 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난 아마도 융베리 레스토랑 열거나 모델활동 이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융베리만큼 다양한 곳에 흥미를 가지던 사람에게 축구가 확실한 선택지로 보이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축구계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거 같다.” 전 아스날 감독 아르센벵거가 애슬레틱에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 선수들이 자신의 커리어가 끝나더라도 이젠 충분히 다들 부유하고 유명해졌기에, 다른 직업을 찾기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 없다, 난 축구선수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클럽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이런 일들을 하면 너무 자랑스럽다.”



확실히 융베리는 벵거가 말한 바 대로 하고 있다. 아스날팬들은 눈에 띄면서 컬러풀했던 헤어스타일과 그에 걸맞던 성격을 가졌던 한 소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경기 때와 트레이세션때 사이드라인에 서있는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조각 같은 외모, 강철 같은 집중력, 그러나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융베리는 이제 코치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부카요 사카와 조윌록이 융베리의 왼팔 오른팔로 있으면서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융베리가 런던 콜니(아스날 훈련장) 가치있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지, 그리고 우나이에메리와 그의 스태프들과 잘 대화하기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야기들과 함께 말이다.



 경기장 내에서 호불호가 갈리던 선수가 이제는 아스날 미래의 감독으로 얘기되고 있다는건 정말 놀라운 변화이다.



융베리는 MLS 시절 구단 유튜브에서 자기가 어떻게 축구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인터뷰로 밝힌바 있다.   “ 은퇴하고 나면 어떤 상상을 한다. 적어도 난 그랬는데, “ 좋아 이제 난 원하는 걸 맘대로 할 수 있어, 이제 나보고 아침에 일어나라고도 안하고 내가 운동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 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걸 난 20년 정도 꿈꿔왔다. 그리고 이게 내게 주어지고, 1년이나 2년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보면,  “시발 이게 뭐지. 이게 존나 골프치고, 집에서 존나 쉬고… 아 이거 겁나 지루한데;”



 융베리는 그때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 도움을 준 남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르센 벵거말이다.



 “ 난 국대시절 알게된 사람들에게도 물어봤고, 벵거에게도 물어봤다. , ‘내가 코치되면 어떨까?” 이게 정말 멍청한 생각일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아냐 전혀, 우린 니가 잘할거라고 생각해. 너가 하고싶은걸 해’ 그걸 듣고 나 역시도 ‘좋아 한번 질러보자”



아마 아스날 팬들은 융베리가 경기때도 질러버릴 때마다 득점하던 걸 기억하기에 이에 대해 잘 알것이다..



융베리가 코치코스를 수강할 때, 그 코스에서는 본인이 직접 선택한 클럽의 젊은 선수들과 며칠 같이 보내도록 요구했다. 융베리는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던 Halmstads Boldklub(이하 HBK)을 선택했다.



 니클라스 구드문손은 융베리가 HBK에 처음 퍼스트팀 드레싱룸에 등장했을 때 있던 융베리의 팀메이트였다. 그리고 피치위에 설 때를 제외하곤 조용했던 소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거기서 융베리는 개성이 강했던 선수로 기억한다.



 “융베리가 17살 때 1군에 승격 했는데, 이미 1군에는 융베리보다 2년이나 3년 먼저 유스에서 들어온 선수들이 있었다.” “ 드레싱룸에서는 꽤나 부끄러움이 있던 애였다. 그리고 가끔 그와 그의 친구들은 훈련에 늦게 와서 별금을 내곤 했다. 그러나 확실히 융베리가 스킬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융베리가 가진 특별한 것을 발견했고 그가 엄청난 커리어를 쌓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 그가 정기적으로 출전했고 우리는 그가 1995년 파르마와의 컵위너스컵 때 그 유명했던 경기에서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기억한다. 그는 18살이었는데 스토이치코프를 제쳤다. 융베리는 그로부터 팔꿈치를 맞았는데, 번쩍 일어나서 스토이치코프에게 불같이 화냈다. 확실히 초기부터 자신감이 넘쳤던 선수였다.”



 “ 그는 Halmstad에서 볼 수 있는 축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은 다 평범했다. 비록 특별한 사람일지라도, 잘난듯이 행동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융베리는 즐라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스웨덴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큰일 난다.”



 구드몬슨은 융베리보다 5살 많았고 융베리보다 먼저 프리미어리그로 넘어가서 3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융베리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그 이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는지도 회고했다.



 “ 꽤나 초기부터 융베리는 자신의 커리어를 신경썼죠, 그는 매우 프로페셔녈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HBK팀 소속 선수들의 가족 모임에 회장이었습니다. 프레디의 어머니와 제 아버지는 제가 블랙번 떠나고 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죠. 그들은 제가 잘지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했습니다. 프레디의 가족은 프레디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고 프레디도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Markus Wephton은 Halmstad에 살고 있고 그는 그의 지역 팀과 아스날을 동시에 열정적으로 몇십년간 응원했다. 그는 이 스웨덴 클럽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어린 융베리는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고 기억한다. “ 전 마을밖에서 프레디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 그 시기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나이대였습니다. 우리는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그 선수들을 목격하곤 했죠. 그러나 프레디는 달랐습니다. 그는 매우 경기에 집중했고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그때부터 명성이 꽤나 좋았죠.”



 프레디는  그 당시 원정경기를 떠날 때면 팀코치에게 자기 배개를 가져온 것으로 유명했다. 고속도로도 도달하기전에 프레디는 골아떨어졌다. 프레디는 말이 많진 않았지만 인기도 많았고 확실한 결단력과, 존재감으로 인해 팀 내에서도 호평이었다.



 융베리의 Halmstad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그 마을의 온갖 다른 스포츠 활동, 핸드볼이나 테니스등등 과 함께 경기장 벽에 세겨져있다.  (참고로 로이 호지슨도 거기 새겨져있는데, 로이호지슨은 감독으로서 70년대에 거기서 Halmstad의 첫 리그우승을 이끈바가 있다.)



융베리가 아스날 스카우터레이더에 들어온 건 16살 때였다. 그러나 융베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서 스웨덴 떠나길 거부했다. 아스날은 유로 1998 예선전때 화려하게 융베리가 등장할 때까진 이 계획에 만족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스날과 벵거는 자신들이 가진 관심을 더 가속시켰다. 첼시가 뒷늦게 경쟁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벵거는 이 남자를 얻었다. 





 융베리가 아스날 왔을 때, 그는 벵거가 포지션 변경할 계획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융베리는 항상 중앙 플레이메이커로 뛰어왔는데, 갑자기 윙으로 변경된 것이다. 처음 그는 당혹스러웠고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런던에서의 첫시즌, 융베리는 에이전트를 만나 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윙어가 별로 안끌리고 그가 중앙 공미로 뛸 수 있는 다른 클럽들을 알아봐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얼마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 융베리가 많이 생각하고 자신의 성공할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 책 ‘Invincible’에서도 프레디가 설명 한 바 있는데, “ 그 전이었으면 그렇게 선택안했을 것이다. 난 아스날을 좋아하고 아르센을 좋아했고, 내 팀동료를 좋아했기에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고민해보고 노력해보고 이걸 할 수 있다고 되내었다. 포변에 대해 배우는걸 불평하는 태도에서 난 그때 여름 태도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21살 때 살면서 처음으로 윙어로 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



뭐 그 뒷이야기는 윙어포지션에서 뒤따라 들어가며,기록한골들과 어시스트, 투지있는 모습, 트로피들, 무패우승까지 아스날 역사에서 그 유명한 시대의 주역으로 기억된다.



 융베리는 지적인 탐구를 많이 하면서 오픈 마인드를 가진 선수로 클럽에 기억되며 두려움 없이 요즘 아스날에서 헥터가 그런 이미지인데, 관습을 따르지않는 선수로 클럽에선 기억된다.



 그는 확실히 자신만의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 아스날 스태프멤버 중 한명이 회고하기를 “2000-2001시즌 즈음, 융베리가 스태프 중 한명에게 자정에 전화를 걸었다. 그 스태프는 자고 있다가 전화가 울렸고 이름이 융베리라고 써있는 걸 봤다고 했다. 그리고 “아 잘 대답해야하는데’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융베리가 갑자기 말했다. ‘아 저 런던 중앙에 있는데, 제가 노란선 한줄 있는 여기다가 주차해도 괜찮은건가요?” 그 스태프 멤버는 “ 아 지금 자정이야 제발!” 융베리는 술 마시는 타입도 아니어서, 술도 안 마시고 저렇게 전화한거다. 융베리의 사회성은 다른 사람들과는 좀 유별났다.”



 금주는 융베리가 자신의 커리얼을 어떻게 꼼꼼하게 관리하는 지 일부이다. 그는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히 엄격한 자신의 루틴이 있다.



 그는 매일 밤 피지오로부터 관리받거나 마사지받는 시간이 있는데, 만일 자신의 약속을 20분 앞당기는 것도 짜증낸다.



 융베리는 의료진이 처방한 약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치즈 알러지 때문에 호텔 갈때 마다 식단에 대해서 살펴보곤 했다.



 심지어 트레이닝 외적인 삻에서도 그는 엄격한 삶을 유지했다. 그는 Hampsted라는 런던 북쪽에 살았다. 늦은 저녁으로 같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반복해서 먹곤 했다. 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않으려고 셰프들이 있는 주방에서 밥을 먹곤 했다. 



 아마도 이러한 특징들,  디테일에 대해 주목하고, 매 삶 규칙성을 보이는 것들이 그가 코치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징후였을지도 모른다.



 융베리의 전 아스날 팀동료인 리딕슨은 코치세계로 융베리가 갑자기 변모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 난 항상 융베리의 선수로서의 축구지능과,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결단력에 대해서 높게 생각했다.” , “ 융베리처럼 플레이하면 확실히 지능적으로 해야한다. 상대 수비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한다”



 “융베리는 본능에 기반한 플레이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느 공간에 들어가야 할지 언제 뛰어들어갈 타이밍인지 아는 선수였습니다. 그런 종류의 선수들은 코치직으로 이동하기에 좋은 툴을 가져서 코치제안을 받곤 하죠.”



 “ 경기장 외부의 융베리 이미지 때문에 아마도 사전 준비없이 뛰댕기며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융베리의 플레이는 지능적인 모습입니다. 단지 달리기만 해서는 융베리가 하는 것처럼 플레이 할 수 없습니다. 융베리의 축구지능은 그가 코치능력을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 융베리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능적인 축구선수들은, 전 융베리도 이 라인업에 포함합니다만,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코치직을 할 때 다른 이들도 그 공간을 이용하도록 할 줄 압니다. 아마 그가 코치직을 걷는다고 해도 전 놀랄지 않겠네요.”



 또 융베리의 유명한 위닝 멘탈리티도 코치로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 코치직을 수행할 때 단호한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효율적인지 따지는 부분은 아주 어려운 일이죠.” 리 딕슨은 말했다. “ 선수 때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코치가 되면 스쿼드에 있는 20명의 선수를 다뤄야하죠. 그랬기에 그 적응력이 뛰어나야합니다. 선수 각자들은 코치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죠. 예를 들어 로이킨 같은 사람을 생각해보죠. 그는 굉장히 의지가 센 사람입니다. 코치로서 선수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걸 바로 결정에 반영합니다. 그러나 진짜 투쟁심이 강한 코치들이라도 현대 선수들에게는 유연성을 가져야하죠.



벵거는 항상 융베리의 위닝멘탈리티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했습니다. “ 융베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이터다.” “그는 자신의 투쟁심 때문에 죽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싸울 원동력을 찾아다닐 선수죠.”



 “그 투쟁심은 융베리를 하이버리에서 레전드로 만들었다. 아스날과 융베리 사이 관계는 서로 상호관계였다. 그는 런던에 사랑빠졌고, 그가 런던에 지금도 머물고 있는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허나 그 사이 잠깐 독일에 있던 적이 있다.


안드리에스 욘커가 2017년 2월 볼프스부르크 감독으로 선임했을 때, 그는 자신을 도울 코치도 데려올 기회를 가졌다. Olivere Mutschler를 피트니스 코치로, 뮌헨시절 동료였던 Uew Speidel도 동료 코치로 예정이었다. 이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욘커는 예측을 벗어났다.

 “다른 이름이 아마 더 의미가 있을 거같네요. “ 미디어를 향해 이렇게 그는 얘기했다. 

“Freddie Ljungberg is coming”

이 일이 일어나기 8개월 전 융베리는 욘에게 전화하기 위해 폰을 집었다. 욘커에 따르면 대화는 단도진입으로 이루어졌다. “ 코치생활 시작하고 싶다.” 융베리가 말했다. “ 좀 도와줄 수 있나?”

 욘커는 당시 아스날 아카데미 매니저였다. 그는 융베리를 U16에 배치했다. 욘커에 따르면 “ 모든 u16세션과 경기에 그는 참여했다. 굉장히 열의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내 생각에 융베리는 선수들 하나하나의 발전에 굉장히 흥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융베리는 u15 풀타임을 지도하고 u19를 보좌할 정도로 인상깊었다. 융베리의 방법론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웜업 세션중 선수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선수들이 인지하지 못한채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어떻게 수비위치에서 플레이해야하는지 효과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욘커를 불렀을 때, 욘커 역시 융베리를 불렀다.

 볼프스부르크는 융베리가 트레이드를 배우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채 코치를 배울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융베리는 자신이 축구실력을 통해 얻은 스포트라이트를 그다지 즐긴 타입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스타일과 고유한 열정들은 개성을 표현했을 뿐이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연기 같은 것이 아니다.

 “ 부모님들은 제게 항상 말했죠. ‘양이 되지 말라.’” 융베리는 설명했다. “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생각해라 “그건 그거고”라고 말이다. 너만의 선택을 해라고 하시며, 그러면 우린 널 지지해줄 것이다.’라고 했고 전 다른 사람들이 no라고 말할 때 yes라고 했죠. 그게 제가 해왔던 것들입니다.”

 2009년 MLS로 가면서 시애틀로 이동했고, 그는 런던 시절 그를 둘러쌓던 수많은 미디어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볼프스부르크는 그 보다 더했다. 하노버와 베를린을 지나가는 고속열차가 정차하는걸 깜박할정도로, 매력적이지만 조용한 동네였다.

 볼프스부르크의 따분할 정도로 조용한 환경은 다른 전 아스날 선수 니콜라스 벤트너와 관련된 일화로도 알 수있다. 벤트너가 2016년 계약을 맺고 몇 달 뒤 독일 언론 11Freunde랑 인터뷰를 가졌다. 이때 VFL센터, 볼프스 부르크 종합경기장에서 기자와 미팅을 가졌는데, 벤트너는 기자에게 어떻게 여기 왔냐고 물어봤다. 기자는 아 도시 중앙역에서 기차 타고 오고 20분 걸어서 소핑센터와 주차장을 지났다라고 답변했다. “아” 벤트너는 웃으면서 말했다. “ 여기 다 둘러 본거네 그러면”

 융베리에게 볼프스부르크는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고 성인 선수들과 일할 수 있는 갚진 기회를 준 장소였다. 사실 융베리는 볼프스부르크가 지루할 틈도 없었다. 욘커의 감독은 문제로 가득찼고 19경기만에 짤렸다.

 욘커가 떠나고 융베리도 자유로워졌다. 그는 Halmstads와도 링크되었으나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 

그러고 런던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수습기간이 거의 끝났다고 감지했고 자신의 또다른 고향으로 돌아올 때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2018년 6월 페어메르테사커가 새 아카데미 매니저로 오면서 했던 첫 행보중 하나는 융베리를 u23으로 부임을 약속한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가 위치한 헤일엔드에서 20마일 떨어진 런던 콜니에서 일할 두번째 기회였다.

 융베리는 이 제안을 받고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새 역할에 대해서 미디어와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그래도 코치로서 중요한 성장단계가 될 지점이라고 느꼈다.

 아카데미 구성단계에서도 융베리의 승부욕은 드러났다. U23은 형식적으로 1군을 보좌하기위한 단계다. 그러나 융베리는 자신의 선수들이 언제 1군 훈련에 뽑혀갈지도 모르는 안개 자욱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U23은 그의 팀이고 그의 선수들이었다. 그는 모멘텀을 만들고 결과를 내기로 결정했다.

 훌리오 플레게주엘로는 u23시절 융베리의 주장이었다. 그가 말하길 “ 융베리는 팀의 스타일을 변화시켰죠. 융베리와 함께, 우리는 더 ‘남자’다운 축구와 좀 더 현실적인 축구를 했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서 플레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곤 왜 위험을 감수하지라고 생각했죠. 융베리는 남자들의 축구를 적용할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따금은 롱볼로 축구하고 굉장히 역습을 이용했습니다. 좋은 콤비네이션이었죠. 

코헨브라몰은 융베리와 함께 u23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융베리가 지닌 코치로서 능력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말했다. “전 아르센 벵거와도 함께했고, 우나이 에메리와도 있었죠.” “전 빅 코치들과 일했는데, 제게 있어 아르센과 프레디가 제가 함께한 코치 중 최고입니다.”

 융베리의 디테일을 향한 태도는 바로 드러났다. 그가 u15와 u16과 일할 때 그는 선수 개개인에게 스킬을 알려줄려고 훈련장 그라운드에서 몇시간을 보냈다. 그는 경기내 전술적 측면 만큼이나 기술적 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를 u23코치할 때도 그대로 가져왔다.

 
  •  “그는 신체 움직임과, 퍼스트터치를 알려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브라몰은 설명했다. “ 앞으로 전진해라면서 그는 내가 많은 슈팅을 때리도록 요구했다. 그는 내게 테크닉을 알려주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 어떻게 발 아웃사이드로 찰 수 있는지 등을 보여줬다. 크로스 할때는 나에게 항상 채찍 같은 크로스로 올릴 필요 없다고 보여줬다. 어떻게 한명을 딱 찍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는 항상 비판을 건설적으로 해줬다.”

     프레디는 메르테사커와 함께 팀이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비전을 공유했다. “ The Arsenal Way”. 말이다.

    “ 패스는 정확하게 보내야 한다.” 브라몰이 얘기했다. “아스날 방식대로의 플레이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프레디와 함께라면 그걸 완벽하게 해야 했죠. 알잖아요. : 공간을 찾아 하프턴하고 높게 플레이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볼을 돌리는 거 말이죠. 선수라면 이걸 완벽히 수행해야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계획대로 움직였을 때는 그 어느팀도 우릴 못 막았죠. “

     융베리의 선수 매니지먼트도 인상깊긴 마찬가지였다. 플레게젤로가 카라바오컵 블랙풀과의 경기로 1군 콜업되었을 때, 융베리는 갑자기 그 소식을 접했다. “ 화요일 밤, 프레디가 제게 전화했죠. 그러말하기를 “ 잘 들어 훌리오. 내가 우나이에게 말했어. 그는 내게 니가 잘 플레이하냐고 물었지.” 융베리가 말해주기를, 자신이 우나이에게 훌리오는 1군에서 플레이할 준비되었다고요. 전 진짜 그 연락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제게 말하길 아침에 얘기해주라고 했다는 군요. 그런데 프레디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일했죠. 미리 전날밤 얘기하기로요. 전 그가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행동하는 것에 너무 만족했습니다.

     브라몰 역시 지난 시즌 말이 아스날을 떠나게 되었을 때 비슷했다. 융베리는 브라몰에게 조언했고 지지를 해줬다. 융베리는 자신이 스웨덴의 축구아이콘으로서의 지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나이 반밖에 안되는 선수들을 하나로 묶고 유대관계를 가졌다. 브라몰은 부카요 사카가 융베리에게 받는 멘토링을 예시로 들었다. “부카요를 보면, 그가 지금은 1군에 있지만 프레디와 시작은 함께했죠. 사카는 매경기 융베리를 찾아가고 클립들을 보면서 뭐가 잘했고 뭐가 못했는지 피드백하죠.

     브라몰이 묘사한 융베리의 모습은, 코치로서 굉장히 배움에 굶주리고 또한 가르치는 열정도 엄청난 모습이었다. 융베리는 자신의 새로움 삶인 코치에 완전히 올인했다. 융베리 스스로도 하루에 11시간 투자하는건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프레디는 열정적이에요.” 브라몰이 말했다. “그는 젊고 다른 일들도 할 수 있습니다. 아르센이 축구에서 했던 것과 같은 마음가짐이죠. 허나 프레디쪽이 좀 더 적극적입니다. 감정이 얼굴로 그대로 드러나죠.
     제 생각에 프레디는 진짜 종합선물세트입니다. 6각형이죠. 전 몇 년 안에 프레디가 아스날의 중추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융베리와 스티브 보울드사이에 이번 여름 있던 “자리 이동”은 그들 모두에게 적절한 이동이었고 실제로 그 둘이 직접 추진했다.

     보울드는 벵거가 떠난 이후 에메리의 코치 중 한명으로 남았지만, 점점 1군 훈련에서 멀어졌다. 융베리의 좀 더 거친 접근법은 리저브쪽 관리보다는 1군 감독을 도전하는 것이 적합했다. 그래서 보울드는 u23관리로 자리 옮겼고 융베리는 에메리의 스태프로 들어왔다. 보울드, 융베리, 그리고 팀내 임대 관리자 벤 크내퍼는 이제 아스날의 “transition team”을 구성해 담당하고 있다. 이는 아카데미에서 선수들이 시니어스쿼드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무를 담당한다.

     변화 이후 융베리는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1군 코치로 스며들기 위해 개인적인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에메리를 포함 코칭그룹에 스페인어권 사람이 많아지면서, 융베리는 대화의 늬앙스를 다 파악하기 위한 최거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스페인어 배우도록 한 것이다. 융베리가 얼마나 자신이 얻은 기회를 최대로 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지 이 장면으로 요약된다.

     에메리와 융베리의 관계는 긍정적이다. 런던 콜니에 있는 스태프들이 말하길 에메리는 자신들의 코치진들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자유도를 부여하는 편이라 한다.

    융베리 역시 코치그룹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공고히 가져가려고 하고 있다. 만일 선수들이 추가 슈팅이나 드리블 세션을 훈련후에 요구한다면 스스로 자원해서 세션을 주도한다.  경기전 드레싱 룸에서는 프레디는 선수 3명 혹은 4명과 각자 앉아서 아이패드를 통해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로 지시사항을 재전달하곤 한다. -이는 아카데미시절부터 해왔던 것이다. 

    웜업때는 항상 융베리를 볼 수 있고 그가 뿜어내는 영향력을 볼 수 있다. 매 경기전 융베리는 굉장히 하나의 지정된 훈련드릴을 한다. 올드 트래포드에서도 그는 고강도 압박을 대비하기 위해 전력질주했고. 그전 본머스 경기에서는 귀앵두지와 자카와 함께 하프턴을 통한 패스받는 연습을 같이 했다. 사카와 조윌록이 사이드라인에서 준비 중 일때는, 융베리가 그들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선수들이 필드에 올라 서기전 마지막 목소리는 주로 융베리의 목소리인 것이다.

     아스날 팬들은 융베리를 감독으로 밀고 싶은 유혹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 감독 아래 저조한 퍼포먼스는 융베리 대권설을 밀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스웨덴인은 언젠가 최고의 자리로 올라서기 위한 야망을 가진 사람처럼 자신을 이끌고 있다.

     허나 그의 전 팀동료 리딕슨은 그가 1군 감독 승격을 하기위해 서두르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있다. “프레디는 현재 우나이 에메리와 한배를 타고 있을 시간이다. 잠시 압박 없이 지켜보자,”라고 딕슨은 말했다. “ 우나이는 충분한 스태프들을 두고 있기에 융베리에게 하루 종일 매일 모든 코치일을 맡기진 않을 것이다. “

     아스날의 직원들은 필요하다면 융베리가 언제든 위로 올라설 자신감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열정은 파괴적이지않고 건설적이다. 그는 코치팀의 일원으로 배우고 있는 이 기회를 즐기고 있다. 그는 유스시절에 자신에게만 포커스를 뒀다면 지금은 집단 차원에서 조직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난 선수시절 양육강식 세상에 일원으로서 단지 경쟁만을 쫓았다. “ 융베리가 말했다. “ 항상 ‘한사람’으로서 버티는걸 필요로 했다. 허나 동시에 팀에 대해서도 생각하곤 했다. 코치가 된 지금 적어도 난 살짝 한발짝 물러날 수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게 아닌, 선수들과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더 좋은 선수,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도울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 이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에고는 제쳐두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돕는데 포커스를 두겠다.”

    아스날에서 어떤 감독 변화가 일어나도, 융베리는 아스날 코치직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들 사이에서 융베리의 인기도 한몫하지만, 가장 또한 벵거가 언급했듯이 “클럽의 가치를 이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융베리는 예전 좋았던 아스날의 일원이면서 새로운 아스날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 그의 전 팀동료인 에두가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융베리를 지지해줄 것이다.

     당분간, 융베리의 수습기간은 이어질 것이다. “언제나 삶은 도전이었다.” 융베리가 말했다. “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배움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켈빈 클라인 속옷 모델에서 아디다스 트랙슈트까지 꽤나 기나긴 여정이었다. 

     지금은 융베리는 마치 집이 어울리는 남자처럼 보인다. 런던, 아스날, 훈련장에서 말이다. 신에게 감사하다. 그가 한번 질러버릴 기회를 주다니 말이다. 
     

  • 융비어천가 울려퍼진다는 건 에메리의 입지가 불안하다는 방증일까요...

  • 잘읽었습니다!
    항상 친구들과 얘기할때, 코치로 성공할 것 같은 선수를 뽑으라면 아르테타와 멀대를 뽑곤 했는데, 그건 그들이 가진 축구지능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서였죠. 아르테타야 뭐 유명하고, 멀대의 경우도 사실 키는 크지만 가진 신체 능력이 정상급의 운동선수가 가질 그것이라고 보기엔.. 그럼에도 정상급으로 오래 성공할 수 있었던 90% 이상의 이유는 그의 지능적 천재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융베리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어서 지금의 이런 평가들이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예전 박지성이 핫할때 아르센은 박지성을 융베리에 비유한 적 있죠. 박지성이 갖춘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능력과 경기 흐름을 읽는 지능을 생각하면, 저 멘트는 물론 박지성을 칭찬하려고 융베리를 가져온 거지만 동시에 융베리의 저런 면모들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장문 번역 감사합니다!
    굉장히 날나리(?) 같았었는데 아주 프로페셔널한 선수였다니 뭔가 의외(?) 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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