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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보드진을 떠나는 켄프라이어에 대한 짧은글

edited September 1 in Football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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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는 켄프라이어)

한국 아스날팬덤사이 뼈구너라는 말이 있는데  이분보다 더 뼈구너라는 말이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켄프라이어 경은 하이버리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렸을 때부터 아스날 선수들을 동경하며 경기장앞에서 친구들과 축구하곤 했다

 12살때 경기장을 우연히 지나는 감독 눈에 띤 켄프라이어경은 그날부터 아스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켄프라이어경은 그러니깐 12살때 1945년부터 아스날에서 지금까지 일한 진정한 뼈구너였다.

 위 동상은 그 12살시절 켄프라이어경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동상이다. 그 누구보다 아스날에 헌신한 그에게 아스날이 할 수 있는 조그만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12살 시절부터 파트타임 알바로 팀에서 연락을 전하는 메신저로 일하면서, 계속 학업에 정진하던 그는 나이가 차고 증권 중개인의 꿈을 갖게 되었다. 여러 회사로부터 일을 제안받은 그에게, 아스날 역시 정규직을 제안했다. 증권회사들의 반 밖에 안되는 연봉을 제안 받았지만 켄 프라이어에게 아스날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꿈만 과도 같았던 일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스날에서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단에 일하다가 1973년에는 아스날에서 전설적인 채프먼과 같이 일하면서 여러 구단의 이적협상을 진행한 밥 월의 후임으로 구단 비서자리에 들어갔다. 비서로 올라가서도 착실하게 일하던 켄 프라이어는


데이비드 데인 눈에 띠면서 1983년에는 디렉터 자리에 오르면서 수많은 아스날 관련 협상을 진행했다


 켄프라이어는 데인과 피츠만과 함께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 아스날  영광의 시대를 이끌던 사람이었다.


 

아스날이 재정으로 허덕이던 시절, 그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비싼 셔츠 스폰서 계약이었던 JVC 계약을 따내는데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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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던 켄프라이어가 아스날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건설이다.


 이슬링턴도 찾아보고 웸블리 임대도 노리면서 온갖 고생을 한 아스날과 켄프라이어가 하이버리 가까이 있던 애쉬버튼 그로브 부지를 발견한건 우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켄프라이어가 끊임없이 부지를 찾은 덕분이었다.


 아스날 영광스러웠던 하이버리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명이면서, 동시에 에미레이츠 시대를 열었던 켄 프라이어

 토니 아담스, 아르센 벵거등이 MR.아스날이라고 불렸지만 70년넘게 아스날에 일했던 켄프라이어야말로 그 누구보다 Mr.아스날이 적합한 인물일지 모르겠다.

 그가 이렇게 보드진을 떠나고 명예직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소식을 접한 지금, 켄 프라이어경도 이제는 편히 여생을 보내며 12살 그 시절 아스날 보듯이 맘편하게 아스날경기를 관람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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