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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데인 연대기 (1) : 영국축구에 미국 스포츠 마케팅을 들여오다.

edited October 11 in Football Forum


다른 사이트 여러 곳에 썼던 글이고 기간도 지나긴 했는데, 국대기간 심심해할 아스날 코리아분들을 위해서 올려봅니다.

어느정도 새롭게 수정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마 국대기간마다 한편씩 연재해서 5편? 정도면 완결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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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아스날 이사회는 데이비드 데인의 부회장직 박탈 찬반여부를 안건으로 올린다. 힐우드 회장은 투표에 앞서서 데인에게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다른 이사회 구성원들은 투표에 앞서서 현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해야 옳은 건지를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아스날의 디렉터를 맡고 있던 대니 피츠만은 표결을 하기 위해서 데이비드 데인의 핸드폰을 빼앗고 방에서 내쫓았다.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지만 그 순간 데인이 할 수 있던 일은 없었다. 문앞에서 표결을 기다리고 있던 데인은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이었을까, 그렇게 발표된 투표결과는 데인의 부회장직 박탈과 이사회멤버 퇴출이었다.

아스날의 청사진을 그리고 아스날이라는 클럽을 세계적인 클럽의 반열에 올렸던 그가, 그렇게 아스날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축구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1983년, 아스날에 투자하며 축구계에 들어온 데이비드 데인은 2007년쯔음에는 축구계의 거물이 되어있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아스날팬들은 데이비드 데인에 대해 굉장히 막연한 인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영입협상에 있어서 굉장히 능한 사람, 굉장히 좋은 선수를 잘 데려오는 사람정도로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데이비드 데인은 그보다 더 거대한 사람이었다. 1992년 잉글랜드 리그 연맹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체제인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키는 주역이였으며 잉글랜두 축구의 성지 웸블리를 새로 짓는 뉴 웸블리 프로젝트에도 기여했으며 당시 FA의 부회장직에 올랐고 유럽 엘리트 클럽 모임이고 언제나 슈퍼리그를 계획중이라고 의심을 받았던 G14의 회장이었다.


이런 엄청난 지위를 보유하고 있는 남자가 아스날 내 권력다툼에서 밀린 것이다. 어찌보면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아스날에서 데인이 나오고 13년이 지났다. 여전히 아스날의 행정으로나 커머셜이나 여러 아쉬운 모습을 보일때마다 오랜 팬들 사이에서 나오던 탄식은 "데인이 있었으면..."이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데인이 정확히 어떻게 걸어왔기에 그렇게 아웃된디 13년이 지났는데도 아쉬움과 볼멘소리가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이제 많이 없다. 아넬카를 비싸게 팔고, 단순히 벵거를 데려온 남자로 데이비드 데인을 기억하는건 그가 어떻게 영국축구와 아스날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무시하는 이야기다.

그러면 데이비드 데인이 어떻게 아스날과 영국축구를 바꿨는지 그 시작부터 살펴보자.


데이비드 데인은 형제와 함께 지역내 성공한 사업가였다. 이러한 사업자금을 바탕으로 그가 축구계에 등장한것은 1983년이었다. 아스날의 16퍼센트 지분을 29만 2천파운드에 사면서 등장했고, 이에 대해 당시 아스날 회장이었던 피터 힐우드는 “정신나간 짓이다. 어떤 부분에서 보더라도 그 돈은 이제 죽은돈이다”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데이비드 데인이 아스날 지분을 인수했을 당시 아스날 리그순위는 10위였다. 그가 제대로 돈을 투자만 했으면 돈 이상의 가치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데인은 아스날을 택했다. 그리고 이 죽은 돈을 ‘살아있는 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데인은 사업가 시절 자신의 미국인 아내와 함께 플로디아에 머물면서 미국 스포츠를 접했다.


미국 스포츠 산업의 발달은 80년대에도 어마어마했고 실제로 바이언의 울리 회네스 역시 미국에서 스포츠비즈니스를 배워와서 뮌헨의 자본을 크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보를 데인 역시 아스날에서 걸어나갔던 것이다. 영국의 축구는 감소하는 관중수, 창궐하는 훌리건으로 인해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데인이 아스날에 들어온 직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 난 잉글랜드 축구가 미국 스포츠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스타디움은 편하고 가족 친화적이면서 관중들의 흥미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되었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에서 는 TV가 전부다. TV와 연계된 산업이 없거나 최악이면 그 상품은 실패했다.” 라고 말하면서 빠르게 미국식 스포츠비즈니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데인은 하나하나 바뀌기 시작했다. 83/84시즌이 시작하자 그는 바로 미국식 선수등장을 도입했다. 장내 아나운서가 터널에서 선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를때마다 선수가 등장하는 형태였다. 이런 가벼운 변화들부터 데인은 시작했지만 이러한 사소한 것들 하나부터 선수들이나 내부에서는 불평이나 반대를 시작했다.



당시 아스날의 스타였던 찰리 니콜라스는 이에 대해 “난 이런 우스꽝스러운 과장광고 같은 짓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아스날 팀원 한명으로서 등장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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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경기장내 스크린을 설치했다.


 하이라이트나 경기 리플레이를 보여줬던 이 스크린을 구단측은 처음에는 거절했다. 스크린 근처에 있는 관중들에게 너무 시끄럽지않냐고 따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행되었고 아스날팬 심지어 원정팬들 마저도 경기 중 특정 장면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바라봤다. 



 1989년이 되자 데인은 영국축구에서 가장 주목하는 남자가 되었다. 아스날 주식의 41%까지 보유하게 된 데인은 또다른 상업적인 돌파구가 없나 고민하게 되었다. 

 미국스포츠처럼 아스날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장사를 하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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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인이 처음왔을때 그저 '맨체스터 버스들의 쉼터'였던 핀스버리 파크에  'the arsenal world of sports'라는 가게를 오픈했고 

 경기때마다 'Make Money with arsenal' 이라는 소녀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아스날에서 파트타임 형태로 뛰면서 아스날의 여러 머챈다이즈 상품을 가져와 경기장 방문하는 팬들에게 파는 형태였다.  

 이러한 여자애들은 아스날에 있어서 또하나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소소하지만 아스날이 팬들로부터 돈을 벌어내는 또하나의 창구가 되었다.



이에 멈추지 않고 데인은 Clock end위치에 새로운 부스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6.4m 파운드가 투자된 이 사업은 아스날 경기를 보면서 음식을 사고 먹을 수 있게 만들자가 목적이었다.

기존보다 더 비싼 위치에 아스날이 음식들을 팬들에게 파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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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은 이러한 부스사업을 두고 "21세기를 향해가는 아스날에게, 경영적으로 외식문화까지 커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구상이다'라고 얘기하면서 큰기대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KBO들에서 여러 야구장들이 이런 문화를 앞다투어 도입하려했던걸 생각하면 데인의 생각이 한참이나 앞섰다는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대처 정부의 테일러 리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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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브로 참사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정리한 이 리포트는 훌리건의 폭동만이 원인이 아닌 경찰의 입장 통제 실패가 핵심 원인이라고 파악했다. 그래서 다시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않게 입석 관람의 폐지와 지정 좌석제 도입을 주장했다.



힐스보로 이전까지 영국 사람들은 입석 응원이 진짜 축구관람이라고 여겼기에 좌석을 잘 앉지않았다. 좌석제가 추진된 이후 한 팬은 데이비드 데인을 향해 “ 시발 축구를 왜 앉아서봐 좆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데인은 이러한 좌석제 추진이 상업적으로 이득을 찬스라 생각했다. 지정 좌석을 통해 축구장 문화를 바꾸고 미국스포츠들이 하는 것처럼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생각이었다.



좌석을 팔아서 16.5m정도 수익이 나올거라고 내부조사결과 나왔다. 문제는 그전까지 좌석은 최악이었기에 새로 바꿔야 했고 추가비용으로 22.5m파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데인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이렇게 추가 자금이 끊임없이 요구되었다.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단 투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기다 이렇게 좌석을 바꾼다 한들 아스날이 이렇게 고정비용을 지출해가면서까지 찾아 올만한 재미있는 축구, 이기는 축구를 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비싼돈 들여서 투자한들 재미가 없으면 누가 찾아 오겠는가.




데인을 일단 축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움직임을 했고 조지 그레이엄이라는 감독을 아스날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그는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하며 19년만에 아스날을 잉글랜드 정상으로 올렸다. 조지 그레이엄의 지도력으로 아스날은 일약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사업과 축구적 재미는, 아스날이라는 브랜드를 리브랜딩 하고 있었다.  기존에 훌리건들이 난동부리면서  진짜 거칠고 위험한 축구장에서 점점 런던 내 젊은이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지루하면서 노동자들 훌리건들의 클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아스날이 리브랜딩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아스날을 보러가면 아래와 같은 분위기들이 보였다.


레플리카 유니폼들을 입고온 팬들이 가방에는 잔뜩 아스날 관련 굿즈를 넣고 경기장 주변 부스에서 파는 나초와 맥주를 먹으며 정말 잉글랜드 최정상을 다투는 클럽의 경기를 보고 하이라이트를 대형 소니 텔레비젼에서 틀어주는 그야말로 신세대를 위한 장소로 아스날 경기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데인은 아스날을 더욱 더 키우고 싶었고 더 뛰어난 선수를 원했고 그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데인의 야망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이러던 어느날 데이비드 데인은 아스날 성장과 함께 축구계 영항력도 커져가고 1986년 fa위원회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솔깃한 제안을 갖고 왔다. LWT의 회장이며 훗날 축구협회장이 된 그렉 다이크는 데인에게 당시 빅5클럽의 대표를 한자리에 모아달라고 했다.

당시 빅5는 리버풀,아스날,토트넘,맨유,에버튼이었다.

그는 빅5 대표에게 이렇게 말을 꺼냈다.

“당신들은 축구를 통해 아무런 수익도 못올리고 있잖아. TV 방영되고 있는데 이로 돈벌생각은 못하고 있는가? 내가 각 클럽에게 100만 파운드 씩 줄 테니 5클럽에 우리 회사에게 독점 중계권료를 주게”

이를 듣고 데인은 그가 항상 생각하던 TV와 연계된 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된다.


 TV를 통해 중계하면서 거기서 익사이팅한 축구를 하면 아스날은 더이상 런던 주변의 관중이 아닌 전국적으로 팬을 만들며 수익을 만들 수 있고 더나아가 유럽에까지 커머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잘 읽었습미다
  • 잘 봤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가 많았던 구너사우르스도 미국 스포츠마케팅을 벤치마킹한 데인의 작품인데 희찬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보니 다시 또 생각이 나네요.
  • 잘 읽었습니다.
    서두에 나온것 처럼 데인을 그저 웽거를 데려온사람, 뛰어난 협상가 정도로 알고있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나머지 2 ~ 5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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