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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데인 연대기 (2) : 구식 리그를 새로운 PL로 탈바꿈하다.



 데인은 전편에 언급했듯이 tv중계권료때문에 리그와 갈등을 빚었지만, 단순히 그문제를 벗어나 더 많은 불만들을 리그에 갖고 있었다. 데이비드 데인은 아스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리그 자체의 파이도 성장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스날에 도입한 미국 스포츠 마케팅을, 리그 전체에도 적용하고 싶어했다.

 하프타임을 15분으로 연장해서 중간에 들어갈 커머셜 광고를 늘리자고 얘기했고, 또다른 안건으로는 아래 사진처럼 백넘버만 박혀있는 당시 프로팀 상의에 선수들 이름을 박아넣자고 건의했다.  미국 NBA에서 선수들마다 상징하는 번호가 있고 그 선수 번호와 이름이 새겨있는 유니폼들이 엄청나게 팔리는 모습을 보고 이걸 잉글리시 풋볼에도 도입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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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당연시 되던 것들을 진작에 알아보고 도입하려한 데인의 시도는 놀랍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시도는 좌절되었다. 데인의 아이디어를 당시 1부리그 상위권 팀들도 동의했지만 이러한 안건들에 있어서 하부리그가 반대를 했기때문이다. 당시 리그내의 어떠한 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투표를 거쳐야했다.

그리고 이 투표라는게 1부리그입장에서는 약간 불만족스러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면 각각 리그가 가진 투표권비중의 합산을 따져보면 하부리그가 더 많았기때문이다.  

1부는 팀마다 1.5개의 투표권을 줘서 총 33개의 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2부는 팀당 1개  3,4부는 전체가 각각 12표씩 배분하면서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를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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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은 더 풋볼리그(FL)측이 지나치게 하부리그에 치중하고 편을 둘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중계권료 분배에도 이어졌다. 하부리그가 많은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중계권료도 하부리그에 유리하게 배분되어있었다.

중계권료 역시 표와 비슷하게 1부가 50%, 2부가 25% 3,4부가 각각 12,5%씩 가져가게 되어있었다. 이러한 구조를 데인은 바꾸고 싶었고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등장한 것이 바로 ITV 스포츠 사장이면서 동시이 LWT( ITV런던지부)의 사장이었던 그렉다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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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그렉다이크, 중 데이비드 데인)

그렉 다이크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프리미어 리그를 만들어낸 단 한사람을 꼽아야 한다면 그건 데이비드 데인이다. 이 사업에 속한 그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못한 전망을, 데인은 현실화 시켰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렉 다이크 역시 프리미어리그를 같이 만들어낸 주역이였다.    둘의 밀접한 관계는 1989년 그야말로 타이틀 주인공이 순식간에 바뀌었던 역사적인 경기였던 안필드 원정을 보러 떠나는 개인비행기를 같이 탔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마이클 토마스가 추가시간에 골을 넣으면서 아스날이 승점도 동률이고 골득실도 동률이지만 드라마틱하게 다득점으로 우승하던 그 날 그 경기를, 영국 전역에서 1400만명이 TV를 통해 지켜봤다.

이 우승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다이크는 데인에게 시청자수를 알려주면서 이렇게 엄청난 숫자가 이 경기를 봤다라고 말했지만, 데인은 그래봐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돈은 얼마인가라고 불평했다. 

그렉 다이크 역시 이는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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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축구 중계는 BBC와 ITV가 나눠서 하고 있었다.  ITV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중계권료를 배팅했고 결국 ITV가 독점 중계를 하게 되었다.

이때 하이라이트 중계권 역시 ITV가 가져가면서 BBC의 간판 프로그램인 MOTD는 중단되었다.  문제는 ITV가 너무 많은 중계권료를 불러서 이것이 ITV에게 부담이 되고 있던 실정이었다. 여기서 그렉다이크와 데이비드 데인이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다.

다이크는 자신들의 잉글랜드 강팀들과만 중계계약해서 독점 중계하면 자신들이 더 지출해야하는 중계권료가 줄어들테고, 아스날과 같은 강팀들은 전체 중계권료는 줄어들었어도 자신들에게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을테니 이득이 된 상황이었다.


다이크는 데인에게 잉글랜드의 빅5를 소집해달라고 요청했고 데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다이크는 빅5가 모인 자리에서 한팀당 백만 파운드를 제공해주고 독점적인 계약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당시 아스날 1년 수입이 1백50만 파운드였다는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다이크는 훗날 그날을 회고하며 아래처럼 말했다.

 “나는 마실 것들을 가지고 그들에게 갔다.  그들은 나에게 얼마까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서 ‘1년에 백만’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뭘 잘못들은 건가 라고 생각했다. 축구팀을 운영하면서 그만한 액수를 본적도 들은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 그렉 다이크과 자신이 함께한 아이디어에 데이비드 데인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앞서 말했듯이 TV와 연계되지 않은 산업은 그 어느 산업이든지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TV를 통해 홍보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고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영국 축구팀들은 TV 중계권료로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하는 편이었다. 


맨체스터가 경기 중계로 얻는 수익은 경기전 자기들이 파는 책자인 프로그램으로 얻는 수익보다 낮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이니 빅5가 나가고 단독으로 계약하려던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비밀스럽게 이들이 움직였지만 그 어느 비밀스러운 얘기도 새어나가기 마련 TFL측은 리그를 이탈하려는 세력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One Game, One Team, One Voice’ 라는 문서를 발표하면서 FA를 끌어들여서 리그를 TFL과 FA같이 운영하면서 다른 이탈을 막을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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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다이크는 빅5의 회동을 다시 소집했고 그 자리에 대해 이렇게 히고했다.  “빅5는 더 많은 돈을 원했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데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와 리그는 갈라져야할 때겠네요’ “



그러고 그들은 실제로 탈출하려했다. 그들은 이 공고해진 리그를 무너뜨릴 방법은 FA라고 생각했다. 만일 FA가 자신들을 지지하면 자신들의 탈출이 가능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리그를 새로 출범하려면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데인의 주도아래 4명의 회장들은 축구협회 The FA를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



 일단 FA를 끌어들이기전 빅5만으로 부족한 대표성을 채우기 위해 5개의 클럽을 더 아군으로 끌어들였다. 아스톤빌라, 뉴캐슬, 노팅엄 포레스트, 쉐필드, 웨스트햄이었다. 이렇게 10개 구단이 움직이면 나머지 구단들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5개의 구단을 더 포섭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FA뿐이었다. 



데이비드 데인과 당시 리버풀 회장이었던 노엘화이트 이 두명은  그당시 FA의 회장이었던 Bert Millichip와 the chief executive인 graham Kelly를 만나기로 결정했다. 



랭커스터 호텔에서 FA의 핵심을 만나러 가는 데인과 화이트는 엄청난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들이 돈문제로 리그를 배신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 목적인 것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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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담판에서 그들은 상상 이상의 수확을 얻게 된다. 분노가 아닌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FA측이 빅5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회장이었던 버트 밀리칩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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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리그니 당신들이 결정해라. 사실상 허락이었다.

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FA와 TFL이 실제로는 사이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FA측은 이따른 잉글랜드내 참사 이후로 리그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가대표 경쟁력 역시 떨어지면서 골치를 겪고 있었다.  거기다가 리그 사무국은 국가대표가 경기할 수 있도록 협조를 잘 안해줘서 잉글랜드 국가대표는 선수 선발도 골치아파하고 프라임 타임때도 경기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다. 



실제로 86년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떨어졌고 유로 88에서는 아예 조별에선에서 떨어졌다. FA측은 이번 계기로 국가대표관련해서 TFL측의 힘을 뺄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이러한 안좋은 성적에도 외국과의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대한 인기는 올라갔고 90월드컵때 4강을 가면서 국가대표의 인기는 절정으로 올랐고 FA의 힘 역시 강해졌다.



FA는 TFL을 완전히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얻었고 새로운 문서를 하나 발표한다. 그 문서의 이름은 ‘The FA's Blueprint for Football".였고 이 내용은 리그를 FA랑 TFL이 같이 운영하자는 FL측의 문서인 One Game, One Team, One Voice’를 반박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이 문서의 주된 내용은 ‘새로운 리그 Premier league를 출범시키고 이 리그는 리그의 소속된 구단이 주체이며 관리는 FA가 맡는다”였다.



완전한 데이비드 데인의 승리로 보였다.  답답한 기존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리그를 출범시키고 수익까지 많이 늘어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러나 이 청사진 발표는 데이비드 데인의 승리이면서 동시에 패배이기도 했다. 데인의 구상과는 다른 부분들이 존재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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